엔지니어의 리더십: 언어가 경험을 지배한다

러시아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현지 엔지니어들과 다양한 과제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들은 어렵지 않게 통했고, 코드와 설계, 수식 같은 것들도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웠던 것은 그들의 언어와 그 위에서 구성된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려면, 그들이 쓰는 언어와 그 언어가 만든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와 러시아어는 언어적으로도 거리가 먼 언어입니다. 어족이 다르고, 문법이 다르고, 문장의 구성 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거리는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지난 글 「엔지니어의 리더십: 고객만족을 위한 3가지 질문」에서 고객을 이해하는 일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그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언어가 어떻게 사람의 경험을 지배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리더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목 차


언어 사이의 거리, 그리고 러시아어의 독특함

언어학에는 언어적 거리(linguistic dist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와 얼마나 다른지를 재는 척도입니다. 절대적인 측정법이 있는건 아니고, 흔히 한 언어의 화자가 다른 언어를 얼마나 배우기 어려운지를 상대적으로 표현합니다. 당연히 가까운 언어는 배우기 쉽고, 먼 언어는 배우기 어렵습니다. 한국어와 러시아어는 이 거리가 상당히 먼 편에 속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어는 일본어와 가깝습니다. 같은 어족으로 묶을지는 학계에서 논쟁이 있지만, 어순과 조사 체계, 한자에서 온 어휘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러시아어는 우크라이나어, 폴란드어 같은 슬라브어와 한 갈래입니다. 영어는 독일어, 네덜란드어와 같은 게르만어 갈래입니다. 프랑스어는 라틴어에서 갈라진 로망스어라 갈래가 다른데, 영어가 프랑스어 어휘를 많이 빌려 단어는 겹쳐도 문법의 뿌리는 독일어 쪽에 가깝습니다. 어휘만 놓고 보면 영어는 독일어와 절반 넘게 닮은 데 비해 프랑스어와는 그 절반에 못 미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어와 영어입니다. 둘은 서로 멀어 보여도 인도유럽어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그 뿌리 바깥에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보면 러시아어도 영어도 먼 언어지만, 그 둘끼리는 한국어보다 서로 가까운 사이입니다. 한국어와 러시아어 사이가 유독 먼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거리가 얼마나 먼지는 간단한 인사말 하나로도 드러납니다. 영어로 “대단히 감사합니다”를 표현하면 보통 “Thank you very much”라고 쓰고, 단어 순서를 바꿔 쓰지는 않습니다. 러시아어 에서는 “Большое спасибо(발쇼예 스파시바)”라고도 하고 “Спасибо большое(스파시바 발쇼예)”라고도 합니다. 순서를 바꿔도 둘 다 자연스러운 말이 됩니다.

이처럼 러시아어는 어순이 자유롭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격(case)에 있습니다. 영어는 단어의 역할을 주로 어순과 전치사로 표시합니다. 누가 주어이고 목적어인지는 순서로 정하고, 소유나 방향 같은 관계는 of, to, by 같은 전치사로 나타냅니다. 러시아어는 단어의 끝, 즉 어미가 그 역할을 직접 표시합니다. 그래서 영어는 “The dog sees me”“I see the dog”처럼 순서가 바뀌면 주어와 목적어도 바뀝니다.

러시아어는 어미가 역할을 표시하기 때문에, 순서를 바꿔도 누가 무엇을 하는지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개가 나를 본다”“Собака видит меня”라고도, меня를 앞세워 “Меня видит собака”라고도 쓸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개가 보는 쪽이고 내가 보이는 쪽입니다. собака에 붙은 주격, меня에 붙은 목적격이 자리와 상관없이 역할을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어에서도 전치사를 씁니다. 다만 영어와 달리 전치사가 어미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치사가 특정 격을 불러옵니다. 모스크바를 뜻하는 Москва(마스크바)“모스크바에서”가 되면 전치사 в와 함께 어미가 바뀌어 в Москве(브 마스크볘)가 됩니다. 전치사와 어미가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 쌍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한국어에도 격은 있습니다. “개가”“개를”처럼 조사가 격을 표시합니다. 다만 한국어는 조사가 있어도 어순이 중요합니다. 조사를 떼거나 자리를 크게 바꾸면 어색해지거나 뜻이 흐려집니다.

흔히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한다고들 합니다. 언어가 이 정도로 다르다면 일하는 방식도 이해하는 방식도 어느 정도 다르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어의 긴 단어

저에게 러시아어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길다”입니다.

먼저, 러시아어 단어는 상대적으로 깁니다. 격과 접두사, 접미사가 붙으면서 한 단어가 길게 늘어납니다. 같은 뜻을 담아도 영어나 한국어보다 글자 수가 많아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예를 들어 “관광 명소”를 뜻하는 “достопримечательности”는 스물한 자에 이릅니다. 영어로는 “attractions”, 한국어로는 네 글자면 되는 말입니다. 이 단순한 물리적 속성 하나가 많은 경험을 바꿔 놓았습니다.

러시아 직원들과 간담회를 하다보면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합니다. 저는 당연히 자막으로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배우의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이해를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러시아에서는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더빙으로 보는 것이 익숙했고, 원래 배우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던 것입니다. 러시아에서는 극장을 가더라도 보통 더빙이 기본입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러시아어의 길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원래 문장보다 길어지고, 그 문장을 자막으로 옮기면 화면을 너무 많이 덮어 버린다고 합니다. 또 읽는 속도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효과적으로 자막을 만들려면 대사를 줄이고 압축해야 하는데 그러면 원래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손으로 글을 쓸 때도 비슷한 일을 보았습니다. 직원들이 같은 단어를 계약서에서는 끝까지 또박또박 쓰면서, 메모에서는 앞뒤만 남기고 가운데를 뭉개 쓰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알아보느냐고 물었더니, 단어의 앞뒤만 봐도 무슨 말인지 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긴 단어를 매번 끝까지 적는 일이 번거로우니, 핵심만 남겨 적는 습관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 축약은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서, 한 사람이 줄여 쓴 메모를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말소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러시아어를 들었을 때는 어디서 한 단어가 끝나고 다음 단어가 시작되는지 가늠이 안되었습니다. 러시아어는 한 단어에 음절이 많고, 모음 없이 자음이 서너 개씩 잇따라 붙는 일이 흔합니다. где(그제), кто(크토)처럼 모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 단어도 있습니다. 게다가 강세가 한곳에 강하게 몰려서, 강세에서 멀어진 음절은 소리가 뭉개집니다. 긴 단어들이 자음을 사이에 끼고 이어지니, 익숙해지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긴 소리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언어의 길이가 일상의 습관만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곧 설계의 제약이 됩니다.

오래전 TV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동료가 겪은 일입니다. 화면에 글자를 직접 띄우는 OSD(On-Screen Display) 개발을 하던 때였습니다. OSD는 작은 화면에 메뉴나 안내 문구를 겹쳐 보여 주는 기능입니다. 그 시절의 임베디드 환경에는 운영체제도, 폰트 파일도 변변히 없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정해진 픽셀 격자 안에 직접 그려 넣어야 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어가 들어오면 문제가 생겼습니다. 긴 러시아어 단어를 좁은 화면 영역에 넣으면 글자가 영역을 벗어나 잘려 버렸습니다. 방법은 둘뿐이었습니다. 단어를 짧은 단어로 바꾸거나, 글자를 더 작게 그려 공간을 꽉 채워야 했습니다. 영어로는 들어가던 문구가 러시아어로는 들어가지 않아 화면 설계 자체를 손봐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어의 물리적 속성이 영화 보는 방식을 넘어, 엔지니어가 무엇을 어떻게 설계할지까지 영향을 준 것입니다.


러시아어의 긴 문장

러시아어는 단어만 긴 것이 아니라 문장도 깁니다. 동사를 형용사나 부사처럼 바꾸는 형태를 활용해, 여러 절을 한 문장 안에 끝없이 이어 붙입니다. 한글이나 영어라면 여러 문장으로 끊을 내용을 러시아어는 하나의 긴 문장으로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절을 멈추지 않고 계속 매달 수 있고, 톨스토이의 소설에서는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넘어가기도 합니다.

직원들이 보고서나 이메일을 쓰는 모습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에 쓴 자료나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보통 기존 자료를 고치거나, 지우고 새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들은 뒤쪽에 새 자료나 문장을 덧붙여 보완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설명을 계속 이어 붙여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글은 자연스럽게 길어졌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이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었고, 자기들 글은 끝까지 다 읽어야 결론을 알 수 있다고, 경우에 따라선 결론이 없을 수도 있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길어진 글은 업무 자료에서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제가 보기엔 늘어지고 지루해 보이는 문서가, 그들끼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풀어 설명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고 성실한 방식이었습니다.

나와 다른 주재원들은 그들이 만든 자료를 받아,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보고 형식으로 다시 다듬어야 했습니다. 핵심을 앞세우고, 길게 풀린 문장을 짧게 끊고, 한눈에 들어오도록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긴 문장에 익숙한 사고와 핵심부터 보려는 사고의 차이였을 뿐입니다.


언어의 차이와 리더의 역할

소장으로 부임한 직후, 빠른 속도에 익숙한 저에게는 그들의 방식이 비효율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 번에 바꾸려고도 했습니다. 한국식으로 짧고 명료하게 쓰자고, 핵심부터 말하자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오래 몸에 밴 방식은 지시 한두 번으로 바뀌지 않았고, 바꾸라는 요구만으로는 서로 지칠 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일하는 방식을 바꾸라는 것은, 그들이 쓰는 언어를 바꾸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긴 호흡의 글도, 덧붙여 보완하는 습관도 모두 그 언어가 빚어낸 것이었습니다. 언어를 그대로 둔 채 그 위에서 만들어진 생각하는 방식만 도려낼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속도를 조절하게 되었습니다. 직원 한 사람씩 글을 바꾸게 하기보다, 현지 리더들로 하여금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한국 직원들의 언어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쪽으로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거리를 좁히는 일은 상대를 제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저도 상대 쪽으로 움직여 그 사이를 함께 줄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리더가 할 일은 그 거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리가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함께 줄여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언어의 차이는 러시아와 한국 사이만의 일이 아닙니다. 매일 부딪치는 옆 부서와도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씁니다. 같은 한국어를 쓰는데도, 내 방식대로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럴 때면 러시아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같은 알파벳을 쓴다고 해서 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말할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언어는 단어를 주고받는 도구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무엇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무엇을 지루해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일하는지를 함께 빚어냅니다. 러시아의 엔지니어들과 일하며 배운 것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다른 경험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이끌려면 그 경험의 거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가 다르면 경험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면 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ChulJoo Kim (김철주)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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