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구소에서 연구소장으로 일하던 시절, 함께 일하던 현지 직원들이 종종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과제를 성공시킬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더 큰 성과를 만들 수 있습니까?”
저는 늘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 당신의 고객은 누구인가? (Who)
-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What)
-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How)
사실 이 질문들은 어디 리더십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소프트웨어 구조 설계의 한 분야인 요구공학(Requirements Engineering)에서 익힌 질문들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객만족을 위한 세 질문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일하는 방식과 구조로까지 이어지는지를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목 차
‘고객’의 중요성
얼핏 생각하면 ‘고객’을 고정된 존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고객은 계속 바뀝니다.
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에서는 리더가 팀원의 고객입니다. 그런데 간담회 자리에서는 반대로 팀원이 리더의 고객이 됩니다. 같은 두 사람의 관계인데도 자리에 따라 고객이 바뀝니다.
내부 보고와 대외 보고도 다릅니다. 내부 보고에서는 리더가 고객입니다. 하지만 대외 보고에서는 리더가 더 이상 고객이 아니라, 팀원과 함께 외부 고객을 상대하는 동료가 됩니다.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평상시와 위기 상황에 따라 역할이 달라집니다.
고객이 이렇게 상대적으로 계속 바뀌기 때문에, 고정된 고객, 고정된 요구사항을 외워두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매 순간 지금 마주한 고객이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늘 세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요구공학과 세 가지 질문
소프트웨어 구조 설계에는 요구공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좋은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술적인 부분을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지, 그 이해관계자(Stakeholders)를 식별하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이해관계자를 식별하고(Who), 그들의 요구사항을 정의하고(What), 그 다음에야 설계를 시작합니다(How).
흥미로운 것은 조직에서의 일도 거의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설명합니다. 하지만 성과를 내는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이해합니다. 좋은 아키텍트가 사용자 요구사항을 이해하듯, 좋은 직장인은 고객의 요구사항을 이해합니다. 고객만족도 결국 일종의 요구공학인 셈입니다.
고객과 일하는 방식
고객이 누군지가 식별되면 이를 통해 일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소프트웨어에서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설계 구조가 달라집니다. 업무에서는 고객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같은 내용도 고객이 누구냐에 따라 전달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업무를 소개하는 경우, 상사에게 설명할 때와 동료에게 설명할 때가 다르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할 때는 또 달라집니다.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언어와 배경을 기준으로, 청자 중심으로 써야 좋은 글이 됩니다.
전달하는 추상화 수준도 고객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경영진에게는 결론과 비즈니스 임팩트를 높은 수준에서 전하고, 함께 일하는 엔지니어에게는 구체적인 방법과 근거를 자세하게 전합니다. 같은 작업도 누구에게는 “처리 시간을 X% 줄였습니다”로, 다른 누구에게는 “불필요한 XX 조회를 제거했습니다”로 설명해야 합니다. 시스템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는 추상화 계층에서 설명하는 일과 유사합니다.
구체적인 장면을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해외연구소 직원들이 한국 고객에게 영어로 메일을 보낼 때, 저는 가능한 한 쉬운 표현을 쓰고 미사여구를 줄이라고 조언합니다. 결론을 앞에 두는 두괄식으로 쓰고, 서술식으로 늘여쓰기 보다는 한국 직원들이 익숙한 개조식으로 정리하라고 합니다. 또 메일이 길어질 때는 첫 화면에서 핵심 요약을 다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읽는 사람의 언어와 일하는 방식에 맞춘 것입니다. 요즘은 AI가 번역을 잘 해주어 이런 부담이 줄었지만, 청자에 맞춰 쓴다는 원칙 자체는 그대로 유효합니다.
고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일하는 방식의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소프트웨어의 아키텍처 설계와 조직의 일하는 방식은 결국 같은 원칙 위에 있습니다.

고객을 이해하자
그래서 고객을 더 이해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들의 배경을 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일하던 해외연구소에서는 대부분의 주요 고객이 한국에서 근무하는 한국 직원들이었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시차도 달랐기 때문에,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읽어내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현지 직원들이 한국의 고객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한국 문화와 한국인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고객의 문화를 이해하면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좀 더 잘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을 이해하는 일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 고객에게도 그 나름의 고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지 직원이 한국 직원에게 업무를 설명하면, 그 한국 직원은 다시 자신의 리더에게 보고를 하곤 합니다. 이때 좋은 성과를 내려면 한국 직원을 이해시키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가 자신의 리더에게 잘 보고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료와 지원을 함께 건네야 합니다. 내 고객이 그의 고객을 잘 만족시키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진짜 성과로 이어집니다.
남은 질문들
여기까지가 핵심인 세 가지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흔히 따라붙는 Why, When, Where는 어디에 있을까요.
원래 요구공학에서는 Why를 가장 먼저 봅니다. 이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를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객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것이 더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Why를 미리 분석해 두어도, 결국 고객이 누구냐에 따라 그 답이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많은 경우 무엇을 원하는지(What)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왜 그것이 필요한지(Why)는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When과 Where는 How에서 따라오는 질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공할지가 정해지면, 언제 그리고 어디서 전달할지는 그 안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구하고, 나머지는 필요할 때 더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수 질문 : 1. 당신의 고객은 누구입니까? (Who) 2. 그들은 무엇을 원합니까? (What) 3. 어떻게 제공할 것입니까? (How)
추가 질문 : 4. 그것이 왜 중요합니까? (Why) 5. 언제 하는 것이 맞습니까? (When) 6. 어디서 하는 것이 맞습니까? (Where)
물론 고객만족 측면에서 Why와 When, Where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입니다. 상황에 따라 더하면 됩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앞의 세 가지입니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요구사항을 잘못 이해하면 실패하듯, 회사에서의 일도 고객을 잘못 정의하거나 고객이 원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는 순간부터 과제가, 성과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AX 시대의 세 가지 질문
AX(AI Transformation) 시대에는 AI가 일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습니다. 코드를 짜고, 문서를 쓰고, 번역을 하는 일은 점점 AI가 대신합니다. 세 질문으로 보면, AI는 주로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How)”를 돕습니다.
하지만 전체 전략을 세우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고객이 누구이고(Who) 무엇을 원하는지(What)를 정의하는 것은 AI가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AI가 How를 빠르게 처리해 줄수록, 처음에 올바른 고객과 올바른 요구사항을 인식했는지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잘못 정의된 요구를 아무리 빠르고 정교하게 구현해도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X 시대에도 여전히 세 질문은 유효합니다. AI의 도움으로 How를 더 빠르게 구현하더라도, 나의 고객은 누구이고, 그들은 무엇을 원하며, 그것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변함없이 사람의 몫입니다.
맺음말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법을 묻는 질문에, 저는 늘 세 가지 질문으로 답해 왔습니다. 누가 내 고객이고,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화려한 전략이나 최신 기술이 먼저가 아닙니다. 내가 마주한 고객이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읽는 것이 먼저입니다.
성과와 성공은 언제나 고객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ChulJoo Kim (김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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