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리더십: 신호등과 라운드어바웃

얼마 전, 차량 통행량이 적은 교외 지역을 지나가다가 라운드어바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도로를 새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교통량이 많지 않은 지역에 라운드어바웃, 곧 회전교차로를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정부가 2010년 본격 도입한 이후 2020년 말 기준 전국에 1,500개가 넘는 회전교차로가 운영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늘려간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때는 매일 수많은 라운드어바웃을 이용했습니다. 영국은 자동차가 도로 왼편으로 달려서 운전석도 우리와 반대편에 있습니다. 방향 감각마저 거꾸로인 그곳에서, 신호등도 없이 차들이 빙글빙글 도는 라운드어바웃은 무척 불편할 것이라는 막연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막상 겪어 보니 생각만큼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작동 원리, 그러니까 그 안에 깔린 약속을 이해하고 나니 오히려 매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지역에서 신호등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신호등과 라운드어바웃은 같은 문제, 즉 교차로의 통행권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풉니다. 신호등은 규칙을 밖으로 드러내 명시하고, 라운드어바웃은 규칙을 참여자에게 맡겨 둡니다. 달리 말하면, 명시적 프로토콜묵시적 프로토콜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글 「엔지니어의 리더십: R&R을 명세(Spec)로 기술하라」에서, 저는 일하는 방식을 밖으로 드러내 명세로 적으라고 했습니다. 모호한 인터페이스가 조직의 갈등을 부르고, AI가 동료로 합류하는 시대에는 그 명세가 전제가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라운드어바웃만 보더라도, 명세를 최소한으로만 두고도 잘 운영되는 시스템이 분명히 있습니다.

지난 글이 명시적 프로토콜을 잘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글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프로토콜이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고, 시스템과 조직을 설계할 때 이 둘을 어떻게 배합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목 차


신호등 vs. 라운드어바웃

교차로는 본질적으로 자원 분배 문제입니다. 한정된 공간을 여러 방향의 차량이 동시에 쓰려 하니, 누가 먼저 지나갈지를 정해야 합니다. 신호등과 라운드어바웃은 이 문제를 정반대 방식으로 풉니다.

신호등은 통행권을 중앙에서 지정합니다. 어느 방향이 언제 지나갈지를 신호가 정해 주고, 운전자는 그 신호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상황을 스스로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초록불이면 가고 빨간불이면 섭니다. 모든 규칙이 신호등이라는 장치에 명시적으로 박혀 있고, 운전자는 그 규칙을 읽어 집행하는 역할만 맡습니다.

라운드어바웃은 중앙 통제 장치가 없는 대신 하나의 약속을 공유합니다. 이미 회전하고 있는 차가 우선이고, 진입하려는 차는 그 차에 양보한다는 것입니다. 명문화된 규칙은 이 한 줄이 전부이지만, 실제 운행은 운전자 각자의 판단, 즉 묵시적 영역으로 채워집니다. 들어갈 틈이 생겼는지, 속도를 얼마나 줄일지, 지금 진입해도 되는지를 매 순간 스스로 정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판단은 다른 운전자도 같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신뢰 위에서만 작동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양보 약속을 무시하면, 라운드어바웃은 그 즉시 엉킵니다.


명시적 vs. 묵시적, 중앙 집중형 vs. 분산형

이 두 방식의 차이를 두 개의 축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축은 ‘규칙’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신호등의 규칙은 밖에 드러나 있습니다. 신호라는 형태로 명시되어 있어서, 누구든 보기만 하면 따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명시적 프로토콜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반면 라운드어바웃의 규칙은 참여자 안에 있습니다. 양보라는 원칙을 각자가 이해하고 내면화해야 작동합니다. 이것이 묵시적 프로토콜입니다.

명시적 프로토콜의 강점은 상대적으로 신뢰가 덜 필요하다는 데 있습니다. 상대 운전자가 신호를 따를 거라는 아주 단순한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빨간불이면 멈춘다는 믿음입니다. 처음 운전하는 사람이든, 그 도시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든 똑같이 작동합니다. 대신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차가 한 대도 없는 새벽에도 빨간불 앞에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규칙은 상황을 보지 않고 그저 집행될 뿐입니다.

묵시적 프로토콜의 강점은 유연함과 처리 속도입니다. 상황에 맞게 알아서 흐르니, 한산할 때는 멈춤 없이 지나가고 붐빌 때는 자연스럽게 순서가 만들어집니다. 대신 다른 운전자에 대한 신뢰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약속을 모르는 참여자가 한 명만 끼어도 흐름이 깨지고, 모두가 약속을 안다는 보장이 없으면 위험해집니다.

두 번째 축은 ‘통제’가 어디에 있느냐, 즉 중앙 집중형이냐 분산형이냐입니다. 신호등은 중앙집중입니다. 판단의 권한이 신호 체계에 모여 있고, 운전자는 그 지시를 받습니다. 라운드어바웃은 분산입니다. 판단이 각 운전자에게 흩어져 있습니다. 이 축의 장단점은 분명합니다. 중앙집중은 일관되고 통제하기 쉽지만, 중앙이 멈추면 전체가 멈춥니다. 신호등이 고장 난 교차로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는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분산은 한 지점의 실패가 전체를 멈추지 않지만, 참여자 각자의 수준에 전체 성능이 좌우됩니다.

두 축은 보통 짝을 이룹니다. 명시적 프로토콜은 중앙집중과, 묵시적 프로토콜은 분산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둘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닙니다. 중앙에서 정한 규칙을 분산된 참여자가 각자 집행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시스템 형성 과정

그렇다면 어떤 시스템은 신호등 방식을 택하고 어떤 시스템은 라운드어바웃 방식을 택할까요. 답의 상당 부분은 그 시스템의 형성 과정에 있습니다.

처음 예를 들었던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도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형성되었습니다. 자동차가 보급되기 한참 전부터 마차와 사람이 다니던 길이 있었고, 그 위에서 운전자들 사이에 관행이 서서히 쌓였습니다. 규칙이 글로 박히기 전에 이미 몸에 밴 약속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맥락이 두텁게 축적된 환경에서는, 라운드어바웃 같은 묵시적 프로토콜이 자연스럽게 작동합니다. 참여자들이 이미 약속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의 도시 도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계획적으로 구축되었습니다. 자동차와 도시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 인프라를 빠르게 깔아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운전자들이 공유할 만한 공감대나 관행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규칙을 밖으로 명시하고 누구나 즉시 따르게 하는 신호등이 합리적입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구도를 법체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미의 관습법은 판례와 관행이 오랜 시간 쌓여 형성된 체계입니다. 명문화되기 전부터 공동체가 공유하던 규범이 바탕이 됩니다. 라운드어바웃과 같은 묵시적 프로토콜에 가깝습니다. 반면 대륙법, 특히 후발 국가들이 단기간에 받아들인 성문법은 규칙을 조문으로 명시한 체계입니다. 누가 읽어도 같은 텍스트를 보게 한다는 점에서 신호등과 닮았습니다. 점진적으로 자란 시스템은 묵시적 프로토콜로, 단기간에 계획된 시스템은 명시적 프로토콜로 기우는 경향이 교통과 법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묵시적 프로토콜이 명시적 규칙 없이 저절로 굴러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라운드어바웃의 역사가 이를 보여 줍니다. 초기의 회전교차로는 차량이 서로 엉켜 멈추는 문제로 한때 기피되었고, 일부가 신호등으로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라운드어바웃이 되살아난 것은 1966년 영국이 진입 차량은 회전 중인 차량에 양보한다는 우선 규칙을 표준으로 정한 뒤였습니다. 이 한 줄의 명시적 규칙이 정의되고 나서야 비로소 운전자들의 묵시적 판단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묵시적 프로토콜도 그것을 떠받치는 최소한의 명시적 토대 위에서 발전한다는 뜻입니다.


조직 설계 관점

이 두 프로토콜은 조직 설계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조직 역시 한정된 자원을 두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는, 일종의 교차로이기 때문입니다.

라운드어바웃형 조직은 규칙을 최소한으로 두고 많은 것을 구성원의 판단에 맡깁니다. 명문 규정은 얇고, 일하는 방식은 공유된 암묵지로 흐릅니다. 오래 함께 일해 서로의 맥락이 두꺼운 팀, 빠른 판단과 처리 속도가 중요한 곳에서 이 방식은 강력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니 회의와 승인 절차에 드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다만 약점도 분명합니다. 맥락을 공유하지 못한 신규 구성원이 들어오거나, 한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흐름이 막힙니다.

신호등형 조직은 규칙과 프로세스를 밖으로 명시합니다. 승인 절차와 규정으로 통행권을 지정하고, 누구든 그 절차를 따르게 합니다. 빠르게 확장하거나 구성원이 자주 바뀌는 조직, 실수의 비용이 큰 고위험 영역에서 이 방식은 안전합니다. 신뢰가 쌓일 시간이 없어도, 명시된 규칙이 그 자리를 메워 누구나 즉시 일할 수 있게 합니다. 대신 경직될 수 있습니다.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절차는 그대로 돌아가고, 중앙의 판단이 막히면 전체가 멈춥니다.

여기서도 비슷한 형성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성장한 조직은 두꺼운 묵시적 규범을 갖습니다. 반면 빠르게 만들어졌거나 급격히 커진 조직은 명시적 프로세스에 더 의존합니다. 어느 쪽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지금 무엇을 더 필요로 하는가에 따라 답이 갈립니다. 그래서 좋은 조직 설계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영역별로 알맞게 배치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맥락이 두껍고 빠른 판단이 가치를 만드는 영역은 분산된 자율에 맡기고, 참여자 변동이 크거나 실수 비용이 큰 영역은 명시적 규칙으로 받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저는 지난 글 「엔지니어의 리더십: R&R을 명세(Spec)로 기술하라」에서 일하는 방식을 밖으로 드러내 명세로 적으라고 했습니다. 다만 같은 글에서 모든 것을 명세로 정의할 수는 없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습니다. 모든 상황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다는 기술적 한계도 있지만, 모든 것을 명시화하는 데에는 큰 비용이 든다는 현실적 한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방식을 어떻게 나누고 배치할지가 숙제로 남습니다. 특히, AI 시대를 고려한다면, 명시적 방식이 모호함을 줄이고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망설여질 때는 일단 더 많이 명시해 두는 편이 안전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명시적 프로토콜에는 늘 따라붙는 비용이 있습니다. 신호등은 매 순간 규칙을 확인하고 따르게 합니다. 그 확인 자체가 비용입니다. 통행량이 거의 없는 새벽 도로에서도 빨간불 앞에서는 멈춰 기다려야 합니다. 보호해 줄 위험이 없는데도 절차는 그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명시적 프로토콜의 안전함은 이렇게 매번 규칙을 거치는 고정 비용 위에 서 있고, 그 비용은 상황이 단순할수록 오히려 비효율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자동화/지능화를 통해 비효율을 줄이려는 시도, 예컨대 통행량을 감지해 신호를 자동으로 바꾸는 스마트 신호등은 어떨까요. 빈 도로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비효율은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센서와 제어기, 전력과 유지보수라는 새로운 비용이 생깁니다. 명시적 프로토콜을 정교하게 만들수록 그것을 짓고 유지하는 비용도 함께 올라갑니다.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옮겨갈 뿐입니다.

오히려, 통행량이 적은 곳에서는 라운드어바웃이 더 합리적입니다. 실제로 서두에 언급했듯이 최근 한국에서도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지역으로 가면 회전교차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신호등 중심인 나라 안에서도, 조건이 맞는 곳에는 라운드어바웃을 두는 것입니다. 반대로 라운드어바웃이 더 많은 나라인 영국에서도 런던 시내와 같이 통행량이 많고 복잡한 도심 교차로에는 신호등을 둡니다. 결국 어느 나라냐가 아니라 그 자리의 상황과 조건이 프로토콜을 결정합니다.

현실의 도로는 이 둘을 섞기도 합니다. 통행량이 아주 많은 대형 라운드어바웃에는 신호등을 함께 두어 진입을 조절하고, 어떤 곳은 큰 라운드어바웃 안에 작은 라운드어바웃 여러 개를 품기도 합니다. 영국 스윈던의 이름난 교차로가 그런 사례인데, 다섯 개의 작은 라운드어바웃이 하나의 큰 라운드어바웃을 이루고 있습니다. 순수한 신호등도, 순수한 라운드어바웃도 아닌, 조건에 맞춰 짜 맞춘 하이브리드인 셈입니다.

조직도 다르지 않습니다. 명세를 정교하게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듭니다. 문서를 쓰고 갱신하고 합의하고 교육하고 준수를 점검하는 일 전부가 비용입니다. 모든 상호작용에 절차와 확인을 박아 넣으면, 위험이 없는 곳에서도 매번 멈춰 서야 하는 조직이 됩니다. 규칙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규칙을 시중드는 상태에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라운드어바웃을 남긴다는 것은 단지 규칙을 덜 적는 게으름이 아니라, 이 영역은 사람의 판단에 맡기는 편이 인프라를 더 강화하는 것보다 낫다는 계산입니다.

명시화의 적정선은 결국 비용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선택인 것입니다.


맺음말

신호등과 라운드어바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명시적 프로토콜은 신뢰가 쌓일 시간이 없어도 누구든 즉시 따르게 하고, 묵시적 프로토콜은 공유된 맥락 위에서 더 유연하고 빠르게 흐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그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명시화는 분명 좋은 것입니다. 모호함이 부르는 갈등을 줄이고 AI를 동료로 맞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명세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100퍼센트의 명시화를 목표로 삼는 순간, 우리는 빈 도로에서 빨간불을 기다리는 비효율을 떠안게 됩니다. 좋은 설계는 무엇을 명시할지를 정하는 동시에, 무엇을 판단에 맡길지를, 즉 어디에 라운드어바웃을 남길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좋은 설계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적절성의 문제입니다.

ChulJoo Kim (김철주)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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