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리더십: 비판적 수용, AI 시대의 판단 기준

회사 일의 많은 부분은 보고에 의해 결정됩니다. 일을 되게 하는 사람들의 보고 진행 과정을 보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보고를 정리할 때 본인만의 가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은 보고의 방향과 목표, 순서가 이미 서 있었습니다. 본인이 자료 전부를 작성하지는 못하더라도, 팀원이 만들어온 자료를 보면서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간혹 이런 사람을 두고 입으로만 일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접 만들지 않으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이 돌아가는 조직에서 그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반대로 그런 역할이 없는 곳에서는 올라온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여 방향이 흐려지거나, 판단을 미뤄 시간만 길어지다가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판단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특히 AI가 자료 생성을 대신하기 시작한 지금, 이 기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글 「엔지니어의 리더십: 오탐과 미탐, 기술의 판단 기준」이 보고를 받는 쪽의 검토 기준을, 「엔지니어의 리더십: 보이지 않는 축, 아는 만큼 보인다」가 상대의 축을 읽는 법을, 「엔지니어의 리더십: 피드백 루프, 실패한 보고는 없다」가 피드백을 대하는 태도를 다뤘다면, 이번 글은 그 기준 자체를 다룹니다.



비판적 수용 vs 단순 평가

일의 진행 상황이나 보고 내용을 리뷰할 때 리더는 평가를 해야 합니다. 이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무비판적 수용입니다. 받아서 그대로 패스합니다. 검토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읽은 것에 가깝습니다. 둘째는 판별입니다. 이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통과와 반려 정도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왜 부족한지 설명하지 못하면 실무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셋째가 비판적 수용입니다. 어디가 왜 부족한지 진단하고, 어느 방향으로 다시 가야 하는지까지 제시합니다.

코드 리뷰를 예로 들어보면, 첫째는 무조건 승인을 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이 함수 좀 이상합니다”라고 판별은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셋째의 경우는 “이 함수는 책임이 두 개라서 분리해야 합니다”와 같은 비판적 수용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직접 그 일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비판적 수용은 방향 제시를 동반해야 합니다. 좋다 나쁘다를 가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태도는 자료에 대한 믿음의 정도에서 출발합니다. 경험이 쌓인 사람은 올라온 보고를 다 믿지 않습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오탐’과 ‘미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럴듯하게 정리된 보고가 틀릴 수 있고, 어설퍼 보이는 보고에 중요한 것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확인을 거친 후 신뢰도가 올라가게 됩니다. 일종의 검산 절차인 것입니다.


판단 기준의 형성 과정

판단 기준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보통 좋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돌아보면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를 거쳤습니다.

  • 실무자로서 직접 만들고 반려당한 경험: 자기가 만든 자료가 반려당하고, 그 이유를 듣고, 다시 쓰는 과정 반복
  • 리뷰어로서 판별 이유까지 함께 본 경험: 좋은 자료와 나쁜 자료를 많이 보되, 각각 왜 그렇게 판별됐는지를 같이 검토
  • 리더로서 방향을 세우고 비교한 경험: 자료를 받기 전에 자기 방향을 설정해두고, 실제와 어디가 다른지 확인

이 셋은 따로 노는 항목이 아니라 하나의 학습 과정입니다. 자기 답을 정하고, 그 답이 현실에 부딪혀 깨지는 것을 확인하는 반복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답이 없으면 무엇이 틀렸는지 알 수 없고, 부딪히지 않으면 틀린 감이 교정되지 않은 채 굳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료를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왜 기준을 만들어주는가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글을 쓰려면 결론을 정해야 했다는 점입니다. 보고서를 쓰려면 무엇이 핵심인지 정해야 하고, 순서를 정해야 하고, 뺄 것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반려되면 어디가 틀렸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판단 기준이 만들어집니다.

또한, 판별까지는 단순히 반복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좋은 QA 엔지니어는 제품 코드를 직접 짜지 않아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찾아냅니다. 하지만 방향 제시는 다릅니다. 어느 쪽으로 다시 가라고 말하려면 나라면 이렇게 만들겠다는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판적 수용까지 가려면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글에서 경험이 판단의 축을 만든다고 썼는데, 판단 기준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AI 시대의 딜레마

AI 시대가 되고, AI가 생성을 대신하면서 두 가지 전제가 바뀌고 있습니다.

하나는 학습 과정의 강제력입니다. 예전에는 보고서를 직접 쓰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쓰기 싫어도 써야 했고, 쓰다 보면 결론을 정해야 했고, 반려당하면 다시 써야 했습니다. 훈련을 안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일단 초안은 AI가 만들어줍니다. 결론을 스스로 정하지 않아도 그럴듯한 문서가 나옵니다. 훈련이 일의 부산물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 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뢰를 판단하던 신호입니다. 경험이 부족할수록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고, 정리가 매끄럽고, 용어를 정확히 쓰면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판단 방식이 그럭저럭 통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대체로 머뭇거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I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AI는 정확도와 무관하게 항상 유창하고, 틀린 답도 확신에 찬 문장으로 출력합니다. 유창함을 신뢰의 근거로 쓰던 방식이 더 이상 동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AI의 답을 맹신하기 쉽습니다.

리더 입장에서 보면, 올라온 자료를 평가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자료를 팀원이 만들었든 AI가 만들었든 해야 할 일은 같습니다. 이미 충분한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판단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 AI는 오히려 유리합니다. 생성 속도가 빨라진 만큼 자기 역할의 효과가 커집니다.

문제는 다음 세대입니다. 지금의 리더들은 직접 쓰고 부딪치면서 기준을 만들었는데, 젊은 세대는 그럴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조직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판단 기준을 만들까?

핵심은 단순합니다. AI에게 답을 구하기 전에 먼저 자기 답을 세우고, 그 답이 검증되는 과정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AI로 인해 앞서 말한 세 가지 경로 중 첫 번째, 직접 만들고 부딪치는 경험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메우려면 나머지 둘을 의식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 예측: AI에게 묻기 전에 자기 결론과 구조를 먼저 정리할 것. 완성된 문서 대신 결론 한 줄과 목차 수준이면 충분함.
  • 비교: AI가 낸 결과와 자기 답이 어디서 달라지는지, 왜 달라졌는지, 어느 쪽이 맞는지 확인할 것.
  • 검증: 본인의 판단이 실제로 맞았는지 나중에 확인할 것. 자료가 통과됐는지가 아니라 그 결정이 옳았는지 확인 필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자기 답을 먼저 세우지 않고 AI 결과부터 읽으면 검토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읽고 나서 괜찮다고 느끼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인상입니다. 반려 당할 자기 답이 없으니 배울 것도 없습니다. 무비판적 수용이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절차의 문제인 이유입니다.

지난 글에서 AI가 만든 초안을 스스로 먼저 검산하라고 썼고, 피드백은 내용의 주인에게만 신호가 된다고도 썼습니다. 추가로 검산에는 기준점이 필요하고, 내용의 주인이 되는 첫 단계가 바로 자기 답을 먼저 정해두는 일입니다. 기준점 없이 읽으면 매끄러운 문장에 매료되어 끌려가게 됩니다.

단 AI를 전혀 쓰지 말고 직접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계산기가 나왔을 때 암산 훈련은 대부분 버려도 됐지만, 자릿수나 이 답이 말이 되는지 가늠하는 수 감각은 버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은 생성이라는 작업이 아니라 기준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조직과 리더의 역할

훈련의 주체는 개인입니다. AI에게 묻기 전에 자기 결론을 먼저 세우는 일은 누가 시켜서 되지 않습니다. 다만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노력을 조금 더 쉽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먼저, 자료를 받을 때 작성자의 결론을 함께 요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AI가 정리한 내용이 아니라 본인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묻습니다. 이 질문 하나가 자기 답을 정하도록 강제합니다. 자기 답 없이 만든 자료는 이 질문 앞에서 드러납니다.

다음으로, 자료의 검토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왜 통과됐고 왜 반려됐는지가 남아 있어야 다음 사람이 그것을 보고 배웁니다. 판정 이유를 함께 보는 경험은 개인이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조직 차원에서 정리를 해줘야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맺음말

판단 기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타고난 차이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배우는 속도의 차이일 뿐 경험을 대신해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판단하는 눈이 좋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직접 만들어 부딪치고, 왜 통과되고 왜 반려됐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AI가 생성을 가져가면서 그 과정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공백을 채워야 합니다. 개인에게는 AI에게 묻기 전에 자기 답을 먼저 적어두는 일이, 조직에는 그 답을 물어봐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판단 기준을 형성하기 위한 다른 길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생성은 넘겨줄 수 있지만, 판단은 넘겨줄 수 없습니다.

ChulJoo Kim (김철주)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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