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눈 떠보면 신기술? 기술의 홍수, 길을 잃지 말자

AI 도입과 관련하여 흔한 풍경 하나입니다. 한 대기업 CEO가 SNS에서 신박한 AI 도구 리뷰를 봅니다. 감탄한 그는 개발팀 임원에게 링크를 보내며 한마디 덧붙입니다. “이거 좋아보이는데 우리도 검토해봐.”

실무자가 받는 그 한마디는 단순한 기술 검토가 아닙니다. 사실상 도입을 염두에 두고 검토를 하라는 지시입니다. 개발팀은 그 도구가 우리 회사의 어떤 문제를 푸는지 묻기 전에, 어떻게 도입할지부터 고민합니다. 도구가 먼저 정해지고, 그 도구로 풀 문제를 찾는 일이 시작되는 거죠.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사실, 이런 풍경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분위기 속에 있길래 이런 일이 흔해진 걸까요.
이번 글에서는 이런 분위기의 정체와, 다른 풍경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목 차


데모와 현실의 간극

기술이 세상에 자리 잡는 데에는 단순하게 보면 새로 나오는 단계, 퍼지기 시작하는 단계, 모두가 쓰는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각 단계마다 검증해야 할 것도, 감수해야 할 위험도 다 다릅니다.

문제는 SNS에서 유통되는 AI 도구 이야기 중에 첫 번째 단계의 풍경인 경우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A 도구는 약간의 프롬프트만으로 전문가 수준의 영상을 만든다.”
“B 도구는 워드 문서를 넣으면 발표용 슬라이드가 바로 나온다.”
그런데 그 글들은 마치 그 도구가 이미 세 번째 단계에 있는 것처럼 다뤄집니다.

1단계의 기술을 3단계인 양 다루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도입 비용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구가 무료여도 워크플로우 재설계, 교육, 검증 절차, 실패 복구의 비용은 따로 발생합니다.
한 사람이 5분 만에 만든 결과물을 조직 표준으로 만들려면 6개월이 걸립니다.

“되는 케이스”만 회자됩니다.
SNS의 그럴듯한 리뷰글들은 일종의 편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죠.
데모를 많이 준비해본 사람들은 압니다. 절대로 실제 환경에서의 실패율은 공유되지 않습니다.

신뢰와 책임 문제가 생략됩니다.
토이 프로젝트에서는 80% 정확도면 감탄받지만, 업무에서는 99%도 부족합니다.
특히 책임 소재, 저작권, 보안, 컴플라이언스가 확산의 진짜 걸림돌입니다.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 난이도가 무시됩니다.
단독 데모는 쉽지만, 사내 ERP, 인증, 데이터 거버넌스에 붙이는 순간 난이도는 몇 배 더 어려워집니다.

사용자 학습 곡선이 무시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결과를 뽑는 사람은 이미 그 분야 전문가입니다. 영상 전문가가 최신 AI로 영상을 만들죠.
도구가 평등하게 보급된다고 해서 결과가 평등하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1년 뒤에도 그 회사, 그 모델, 그 가격이 유지될지 알 수 없습니다.
특정 서비스에 의존성이 깊어진 뒤 서비스 종료나 가격 인상으로 무너지는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FOMO, 그 분위기의 정체

저는 이 모든 것을 놓치게 만드는 감정을 설명하는 단어는 FOMO(Fear Of Missing Out)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AI FOMO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까봐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남들이 다 쓰는데 나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이죠.

FOMO는 검증 절차를 건너뛰게 만듭니다.
사용성, 실패율, 도입 비용, 통합 난이도 등은 무시한 채 ‘지금 안 하면 늦는다’는 공포에 사로잡히죠.
그렇게 1단계 기술이 마치 3단계 성숙한 기술인 양 다뤄집니다.

FOMO는 폐쇄 루프의 연료입니다.
유명 리뷰어들의 감탄이 팔로워의 불안을 만들고, 그 불안이 더 많은 감탄 글을 만듭니다.
실패 사례는 공유되지 않고, 루프는 깨지지 않습니다.

가장 위험한 건 시간 축의 왜곡입니다.
“이번 분기까지 도입할 수 있는가?” 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도입 후 몇 년간 살아남을 도구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경영진의 FOMO는 더욱 심각합니다.
빠른 도입을 push 하게 되고, 제대로 검증도 안 된 도구를 실무에 적용합니다. 비용은 결국 실무 현장에서 발생합니다.

AI매터스 2025년도 기사에 소개된 맥킨지의 202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8%가 AI를 쓰고 있다고 답한 반면, AI 사용에서 의미 있는 재무 성과를 거둔 기업은 전체의 6%에 불과합니다. AI를 도입하긴 했지만 실제 가치는 잡지 못한 조직이 대다수라는 뜻입니다. 도입과 가치 창출은 다른 일입니다.

결국, FOMO 혹은 그와 유사한 상황이 되면, 앞 절의 놓치는 것들을 못 보는 게 아닙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인지적 사각지대가 아니라 회피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키워드의 등장

AI 시대에는 새 키워드가 쏟아집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에 이어 ‘하네스 엔지니어링’. 또, 현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각종 ‘에이전트’.

이러한 키워드는 FOMO를 더욱 부추깁니다. ‘이 키워드 모르면 뒤처진다’는 불안이 키워드를 돌게 만듭니다. 흥미로운 점은 정의가 모호할수록 더 잘 팔리는 것 같습니다. 의미가 명확하면 검증할 수 있지만, 모호하면 누구나 자기 식으로 쓸 수 있죠.

최신 키워드를 쓰면 ‘최신 트렌드를 안다’는 증명이 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정작 그 키워드로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있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치 홈쇼핑 광고처럼 만능열쇠가 있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합니다.

물론 키워드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어떤 키워드가 등장할 때는 분명한 배경이 있죠.
예를 들어, 최근 ‘하네스’가 강조되는 이유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AI를 보다 예측 가능한 도구로 만들어 주는 시스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 자체에 매몰되면 안 됩니다. 상황은 저마다 다르고, 한 가지 방식으로 모든 상황을 커버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실버불릿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가야하나?

이제 처음의 장면을 뒤집어 보겠습니다.

같은 CEO가 같은 SNS에서 같은 도구 리뷰를 봅니다. 도구 리뷰 내용을 자세히 보고, 어디에 도움이 될지 인사이트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개발팀에 링크를 던지거나, 도구 이름을 입에 올리는 대신 다음 회의에서 화두를 던집니다.

“우리 업무 프로세스에서 반복적으로 시간이 새는 지점이 어디인가요? 그 지점을 줄일 방법을 같이 찾아봅시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서는 이러한 질문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이 질문이 더 큰 숙제를 만든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우선 이 한마디는 특정 도구를 지정하지 않습니다. 풀어야 할 문제를 먼저 제시했죠. 어떤 방법으로 어떤 도구를 쓸지는 실무가 판단합니다. AI 도구가 답일 수도 있고, 프로세스 개선이 답일 수도 있고, 사람이 답일 수도 있습니다.

이 풍경이 작동하려면 두 가지가 바뀌어야 합니다.

첫째, CEO를 포함한 모든 리더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AI 시대의 모든 리더가 도구 전문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도구가 무엇을 해결하고 있는지 판단할 만큼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SNS의 감탄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 글이 보여주는 게 무엇이고 보여주지 않는 게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폐쇄된 지시 대신 개방형 화두에 집중해야 합니다.
폐쇄된 지시는 폐쇄된 루프를 만듭니다. CEO → 개발팀 → 도구 도입, 그 과정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반면 개방형 화두는 열린 루프를 만듭니다. 영업, 개발, 운영, 어디서든 자기가 보는 문제를 들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도구가 내려오는 게 아니라, 문제가 올라옵니다.

같은 사람, 같은 SNS, 같은 도구. 다른 건 CEO의 역할 정의 하나입니다.

  • 나쁜 시나리오: CEO가 도구를 지정한다 → 실무가 도입 방법을 고민한다
  • 좋은 시나리오: CEO가 문제를 제시한다 → 실무가 해결 방법을 가져온다

맺음말

AI 도구는 빠르게 쏟아질 것입니다. 그 속도를 줄일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흐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SNS의 감탄도, 키워드의 유행도 아닌, 우리 조직 안에 있는 진짜 문제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도구는 그다음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건 달이고, 달은 우리 조직 안에 있습니다.

ChulJoo Kim (김철주)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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