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모델Y의 FSD Lite, SDV에서 HW Spec의 중요성

지난 7월 10일, 테슬라코리아는 FSD(Full Self Driving, 감독형) v14 Lite를 국내에 출시했습니다. 북미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이고, 적용 대상은 2019년부터 2023년 사이에 판매된 미국 생산 모델 3와 모델 Y 가운데 FSD가 활성화된 차량입니다. 대상 차량 중 가장 오래된 차는 출고한 지 이미 7년이 지났습니다.

아쉽지만 제 차는 대상이 아닙니다. 2026년식이고 하드웨어는 오히려 최신이지만, 중국에서 생산된 차량이라 국내 정책상 FSD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드웨어 성능과는 무관합니다. 출고된 지 7년 된 차는 신기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올해 출고된 차는 이용이 불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FSD Lite를 바라보면서 제가 관심을 가진 지점은 바로 SDV와 하드웨어의 관계입니다. 7년 된 차가 최신 소프트웨어를 받는 일은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잘 만든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소프트웨어를 감당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미리 탑재해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SDV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 중 하나가 하드웨어 사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테슬라 모델Y 후기 ④ – SDV, 소프트웨어 특징」에서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플랫폼을 떠받치고 있는 하드웨어 관련 내용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목차


FSD Lite

테슬라의 자율주행 하드웨어는 세대별로 HW3(AI3)와 HW4(AI4)로 나뉩니다. HW4의 경우 2024년 중반 이후 v13과 v14로 두 차례 큰 폭의 개선을 받았지만, HW3 차량은 v12.6에 1년 넘게 묶여 있었습니다. 아마 HW3의 하드웨어가 최신 소프트웨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럴 경우 보통은 하드웨어를 교체하거나, 구형 차량의 업데이트를 포기합니다. 전자는 대당 비용이 발생하고 후자는 고객들의 불만을 남깁니다.

하지만 테슬라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HW4에서 학습한 최신 모델의 주행 방식을 HW3의 카메라와 연산 성능에 맞게 최적화했습니다. 테슬라는 이를 증류(distillation)라고 설명합니다. 고성능 하드웨어에서 학습한 큰 모델의 판단을 저성능 하드웨어에 적합한 작은 모델이 따라 하도록 학습시키는 방식입니다. 하드웨어 교체 없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구형 차량의 주행 품질을 끌어올린 것입니다.

사용해본 분들의 후기에 따르면 HW4용 정식 버전의 FSD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차 상태에서 바로 주행을 시작하고, 스스로 후진하고, 주행과 후진을 자동으로 전환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주차 공간을 찾아 주차합니다. 주행 성향을 조절하는 속도 프로필도 제공됩니다.

이후 시장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대상 차량들의 가격이 오르는 추세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소프트웨어 배포 한 번을 통해 출고된 지 7년 된 차의 잔존가치를 움직인 셈입니다. 기존 시장에서는 없던 일이 생긴 겁니다.


차량의 가치 판단 기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내연기관 차를 이용해 오면서 차의 특징을 나타내거나 다른 차와 비교할 때 쓰는 항목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승차감, 정숙성, 마감 품질, 파워트레인, 옵션 구성, 연비(전비) 등입니다.

저는 이 공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테슬라 모델Y 후기 ③ – 전기차 경험」에서 승차감과 고속 주행 안정성은 기존 완성차 브랜드가 더 낫다고 적었고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자동차의 물리적인 성능 및 완성도는 오랜 시간 축적된 영역이고 소프트웨어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빠진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확장성입니다. 쉽게 말해서 차량을 출고하고 5년이 지난 뒤에 이 차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기존 차량에서는 이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출고 시점이 곧 그 차의 최대 성능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능은 그대로인 채 모든 게 “구형”으로 남게 됩니다. 그러니 비교 항목에 들어갈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FSD Lite 건은 자동차 업계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차는 출고 시점이 아직 모든 걸 보여주지 못한 최저 성능의 상태이고, 어떤 차는 출고 시점이 확장 가능성이 없는 최고 성능의 상태입니다. 두 차는 같은 공식으로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과연 소비자들은 어떤 차를 선택해야 할까요?


Why 테슬라? SDV!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려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2016년 10월, 테슬라는 그날부터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량에 완전자율주행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탑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8개의 서라운드 카메라와 12개의 초음파 센서를 달았고, 연산 성능도 큰 폭으로 개선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자율주행에 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그 연산 성능을 다 쓰는 소프트웨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만들 소프트웨어를 위해 미리 실어둔 것입니다.

기능을 하드웨어로 구현하면 스펙을 정하는 일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확정된 기능에 맞춰서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면 됩니다. 반면 기능이 소프트웨어로 돌아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지금 당장 탑재될 소프트웨어를 위해 필요한 자원은 알아도 3년 뒤에 얼마나 필요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확정된 요구사항에 정확하게 맞추는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여유를 얼마나 둘 것인가의 문제가 됩니다.

이 판단의 결과는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차량 출고 이후 여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있었고 매번 적지 않은 양의 기능이 추가되거나 변경되었습니다. 이번 FSD v14 Lite가 가능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로 정의된 차량이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화면이 크고 버튼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나중에 소프트웨어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드웨어에 여유를 미리 만들어 두었다는 뜻입니다.

테슬라 하드웨어 교체의 역사

물론 테슬라의 예측이 매번 맞았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 오토파일럿 하드웨어인 HW1은 외부 공급사의 솔루션을 기반으로 했고, 이후 세대와 구조가 달라 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반면 HW2와 HW2.5 차량은 이후 HW3로 실제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FSD를 구매한 고객이 대상이었고, HW3 보드가 기존 슬롯에 그대로 들어가도록 설계돼 있어서 컴퓨터 모듈 하나만 바꾸면 됐습니다.

HW3에서 HW4로 넘어가는 과정은 좀 다릅니다. 보드 크기나 소비 전력이 달라져 단순 교체가 불가능하고, 또 카메라 해상도까지 함께 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진행된 교체 논의가 결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올해 1분기 실적발표에서 테슬라는 HW3 차량으로는 감독 없는 자율주행에 도달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구제 방안을 내놨습니다. 신차 교환 시 할인을 제공하거나, FSD를 구매한 고객에게는 AI4 컴퓨터와 고해상도 카메라, 배선까지 포함한 개선 하드웨어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미래 요구사항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측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한 하드웨어 교체 가능성까지 설계에 반영한 하드웨어 세대는 적은 비용으로 변화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예측을 정확히 하는 것보다, 틀렸을 때 어떻게 복구할지 설계에 반영해 두는 쪽이 더 현실적인 목표에 가까워 보입니다.


SDV의 한계는 HW Spec

FSD v14 Lite는 HW4에 적용된 정식 버전과 다릅니다. 이름에 붙은 Lite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주행 관련 부분은 증류를 통해 대부분 넘어왔지만, 자율주행 등급 자체는 넘어오지 못했습니다.

원인은 연산 성능보다 메모리 대역폭에 있습니다. 머스크는 v14 Lite 배포 시점에 AI3의 실효 메모리 대역폭이 AI4의 약 15% 수준이어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신경망 추론은 매 순간 대량의 데이터를 메모리와 프로세서 사이로 옮겨야 하는데, 대역폭이 좁으면 연산 유닛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제약을 소프트웨어로 우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델을 압축하면 정확도가 떨어지고, 정확도를 지키면 대역폭이 부족합니다. FSD Lite에 감독 없는 주행까지 적용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배포 이후에는 일부 HW3 차량에서 오토파일럿 컴퓨터의 과열 경고와 기능 중단을 겪었다는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미국 매체 일렉트렉의 보도에 따르면 컴퓨터 교체 진단을 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다만 v14 Lite가 원인이라는 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해당 컴퓨터가 수랭식이라 냉각 성능에 여유가 있다는 반론도 나와 있습니다. 테슬라의 공식 입장은 아직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아무리 최적화하고 모델을 아무리 압축해도 물리적인 제약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연산 성능이든 메모리 대역폭이든 발열이든, 하드웨어가 남겨둔 여유의 크기가 그 차의 소프트웨어 한계를 정합니다. 여유가 있었기에 7년 후 신기능을 올릴 수 있었고, 동시에 여유가 부족했기에 Lite까지만 가능했습니다.


테슬라 FSD Lite의 시사점

이번 일에서 얻은 시사점은 SDV에서 소프트웨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하드웨어를 설계하던 시점에 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하드웨어 한계에 걸린 차량은 비용을 들여서 하드웨어를 교체하거나 업데이트를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테슬라는 하드웨어에 여유를 둔 덕분에 증류라는 세 번째 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이 방식이 가능한 중요한 배경으로 소프트웨어의 성격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기존 코드 기반의 소프트웨어는 아무리 최적화를 잘해도 결국은 코드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코드를 줄이면 그에 해당하는 기능이 그대로 사라집니다. 반면 AI 모델에 사용된 신경망은 크기를 줄여도 학습된 주행 특성이 상당 부분 남습니다. AI 스택으로 넘어간 것이 오히려 구형 하드웨어의 수명을 늘린 셈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업체도 같은 방식을 쓸 수 있을까요. 현재 기존 제조사에서 발표하는 SDV 전환은 대부분 신형 차량부터 적용되고, 이미 도로 위에 있는 차량은 대상이 아닙니다. 이를 단순히 소프트웨어 역량이 부족해서라고 보기는 어렵고, 좀 더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하드웨어 아키텍처가 세대마다 바뀝니다. 새 아키텍처를 전제로 만든 소프트웨어는 이전 세대 차량에 올릴 자리가 없습니다. 둘째, 주행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연산 여유가 있어도 그 위에 올릴 자기 모델과 학습 체계가 없으면 증류라는 선택지는 아예 성립하지 않습니다. 셋째, 안전 검증 부담이 훨씬 큽니다.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 오작동은 스마트폰과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업계가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검증을 강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용 문제도 있습니다. 판매 이후 소프트웨어 판매나 구독으로 비용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면 남는 연산 성능은 대당 손실일 뿐입니다. 스펙을 요구사항에 맞춰 정확히 자르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다만 그 판단의 결과가 수년 뒤에 선택지를 없애는 결과를 야기하게 됩니다.

결국 기술 발전으로 얻게 된 새로운 선택지가 알려졌다고 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쓸 수 있는 조건은 과거에 하드웨어를 설계하던 시점에 정해집니다.


맺음말

테슬라 모델Y 후기 ⑤ – 총평」에서 현재 자동차의 변화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던 과정과 유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스마트폰의 본질은 터치스크린이 아닙니다. 출고 시점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제조사에서 개발하지 않은 앱을 나중에 실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쓰지 않는 성능을 고려해서 설계했어야 한다는 점이 피처폰과의 진짜 차이였습니다. 피처폰은 기능 목록이 출고 시점에 확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부품을 정확히 맞춰서 선택하는 것이 옳은 설계였습니다.

자동차도 같은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업체가 테슬라를 따라잡기 어려운 이유는 소프트웨어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드웨어 설계 당시 고려했던 가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차를 볼 때는 항목을 하나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차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5년 뒤에 무엇을 할 수 있게 될 것인가입니다.

한편 제 차는 하드웨어에 여유가 준비돼 있는데도 다른 이유로 막혀 있습니다. 정책적인 부분도 빨리 풀려서 저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제약은 하드웨어에서 시작됩니다. 설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ChulJoo Kim (김철주)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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