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NS에서 AI의 발전으로 인해 달라질 모습들을 소개한 글을 봤습니다. 그중 몇년만 지나면 지금의 대치동 학원가를 AI 에이전트로 구성된 온라인 학원가가 대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만약 학생의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진도와 약점에 맞춰 24시간 대응하는 AI가 등장한다면, 굳이 아이를 차에 태워 대치동까지 데려갈 이유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이 예측이 맞을 것 같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아이 모두 대치동에서 공부했고, 아직 둘째 아이는 대치동 학원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보는 대치동 학원가 풍경, 아내 휴대폰에서 쉴 새 없이 울리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단체 대화방, 가끔은 학교 선생님보다 더 자세한 관찰과 분석을 담아 오가는 조언들, 그리고 선생님과 조교와 아이 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를 보고 있으면, 이를 대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제가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제가 본 대치동은 두 아이가 거쳐 간 학원 몇 곳과 주변에서 전해 들은 정보가 전부입니다. 대치동에는 성격이 다른 학원이 많고, 제 관찰은 그중 일부에 치우쳐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 의견 중에는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글에서는 대치동 학원가와 관련하여 제 눈에 비친 풍경과 경험을 중심으로 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단,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대치동 학원가 자체가 아닙니다. AI에 관한 수많은 예측에서 무엇을 놓치기 쉬운지, 그리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목차
대치동의 진짜 상품은 무엇인가?
대치동 학원가의 진짜 가치는 무엇일까요? 사실 지식 전달만 놓고 보면 이미 20년 전에 사라졌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강의를 언제든 볼 수 있는 환경은 인터넷 보급과 함께 이미 2000년대 초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대치동 학원가는 그대로 있습니다. 저는 대치동 학원가가 파는 것이 지식만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학생 수준 평가’입니다.
대치동 학원의 첫 관문은 대부분 ‘레벨 테스트’입니다. 아이의 수준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반과 학원이 결정되는데, 어느 반에 들어가는지가 곧 아이의 현재 수준을 알려주고,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상위 반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희소성 자체가 중요한 상품인 셈인데, AI 에이전트는 무제한으로 복제되기 때문에 희소성을 만들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시공간적 강제력’입니다.
부모가 학원비로 사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아이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 부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구속의 문제입니다. 사실 매 순간 스스로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아이는 애초에 학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정보와 네트워크’입니다.
아이가 학원에 들어가면, 아내는 학원 선생님, 같은 학원에 보내는 다른 학부모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오늘도 아내 휴대폰에서는 수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습니다. 어느 학교가 이번에 어떤 문제를 냈는지, 어느 전형이 올해 어떻게 바뀌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지금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가 돌아다닙니다. 선생님과 조교는 아이의 답안을 직접 보고 판단합니다. 아이는 필요하면 언제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정보와 네트워크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불안의 해소’입니다.
현실적으로 부모가 지출하는 금액에는 일종의 안심 비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비용을 치러야 할 만큼 했다는 감각이 생깁니다. 이 기능은 저렴한 구독 서비스로는 대체되지 않습니다.
위 네 가지 중에서 AI가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AI가 진짜 잘하는 것은 이 네 가지를 둘러싼 지식 전달입니다.
입시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정해진 자리를 배분하는 제도입니다. (현 입시제도의 옳고 그름이나 적절성은 논외입니다.) AI가 모든 학생의 학습 효율을 세 배로 올린다고 해도, 정원은 그대로입니다. 전체가 함께 올라가면 변별의 기준만 위로 이동할 뿐입니다. 오히려 모두가 같은 도구를 쓰게 되면 남들보다 앞서기 위한 지출 동기는 강해집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수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교훈
사실 완벽하게 동일하진 않지만, 우리는 이미 유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먼저 2000년대 초 유행했던 ‘인터넷 강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대형 인터넷 강의 업체들이 등장했을 때도 지금과 거의 같은 예측이 있었습니다. 최고의 일타 강사가 하는 강의를 전국 어디서나 저렴하게 들을 수 있으니 지역 학원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5년이 지난 현재, 결과는 대체가 아니라 병행이었고, 온라인 학원가는 이미 25년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대치동 학원가는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거의 반강제로 원격 교육, 원격 업무를 적용했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고 수업이 원격으로 전환됐습니다. 결과를 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20년에 30만 2천 원으로 잠시 줄었다가 2021년에 36만 7천 원으로 다시 반등했습니다. 원격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던 기간에 사교육 수요도 줄지 않았습니다.
최근 통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국가데이터처와 교육부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5천억 원으로 5년 만에 감소했습니다. 두 기관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학생 수 감소와 방과후학교, 늘봄학교의 영향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사교육 참여 학생 중 월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하는 비중은 11.6%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이는 AI의 영향이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 구성원은 바뀌어도 수요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걸까요?
먼저 대학을 살펴보겠습니다. 학령인구가 줄기 시작했을 때 하위권 대학부터 서열에 따라 학생 수가 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실제는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2022년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96개 대학이 2025년까지 입학 정원 16,197명을 줄이기로 했는데, 이 감축 인원의 88%가 비수도권 대학 74개에 집중되었습니다. 같은 기간 수도권 대학에서는 첨단학과를 중심으로 정원을 늘리는 정책이 추진됐습니다. 학령인구 감소는 전국적으로 발생했지만 정원은 지방에서만 줄어든 것입니다.
동시에 지방 의대는 위치와 무관하게 여전히 최상위 수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2026학년도 정시에서 지방권 대학 지원자는 전년 대비 7.5% 늘어난 반면 서울권은 1.0% 줄었습니다.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서울의 하위권 대학보다 집에서 가깝고 경쟁력 있는 지방권 대학을 택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정부의 거점국립대 육성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거론됩니다.
이러한 패턴을 분석해 보면 중요한 것은 졸업 후에 무엇이 보장되는가였습니다. 인서울 대학은 상대적으로 취업 시장으로의 접근을 더 보장하고, 의대는 아무리 지방대 의대라 하더라도 의사 면허를 보장합니다. 실제 지방의 일반 대학은 오랫동안 이런 기회를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지방권 지원이 늘어난 것도 지역인재 채용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자 수요가 움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부 정책도 지방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6년 정부 예산안에서 거점국립대 예산은 8,733억 원으로 전년 3,956억 원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교육 예산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전략산업과 대학을 묶는 형태로 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지방 대학에 기회를 만들어주겠다는 접근입니다.
다만 대학의 지위 자체는 예산이나 정책만으로 복제되지는 않습니다. 가령 서울대가 서울대인 이유의 일부는 여전히 그곳이 하나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지방 거점국립대를 서울대처럼 만든다 해도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서울대를 원합니다. 즉 선별 자체가 상품인 시장에서는 공급을 늘려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감축된 정원의 88%가 비수도권이었다는 것은, 학생 수가 줄어도 인서울 대학의 지위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학생은 줄어도 정원이 고정이면 경쟁의 강도는 유지됩니다. 기회가 특정 대학과 학과로 좁혀질수록 그 자리를 얻기 위한 선별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집니다. 사교육비 총액은 줄었는데 월 100만 원 이상을 쓰는 비율이 늘었다는 통계가 그 모습일 것입니다.
대학 구조조정은 대치동의 수요를 줄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요의 중심을 옮기고 강도를 바꿀 뿐입니다. 대치동 학원가를 실제로 바꾸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AI가 아니라 정원 배분과 채용 구조, 곧 기회 보장의 설계일 것 같습니다.
조직에서는 어떨까?
같은 질문을 조직에 던져보면 어떨까요?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비교하고 판단의 근거를 정리하는 일은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입니다. 경영에 필요한 지적 능력만 놓고 보면 경영진의 업무야말로 대체 가능성이 높은 쪽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책임의 귀속’입니다.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대표이사의 서명,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것은 판단의 품질이 아니라 책임을 질 주체입니다. AI는 사임할 수도 처벌받을 수도 없습니다. 조직에는 여러 단계의 위임이 있고, 그 끝에는 더 이상 위임하지 않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의사 결정과 추진’입니다.
사람들이 인사나 예산 배분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결정이 최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정한 사람이 조직 안에서 그럴 권한을 가지고 있고, 결과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더 나은 답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 답에 조직이 따르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암묵적 맥락’입니다.
어떤 결정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어느 조직이 무엇을 껄끄러워하는지 같은 정보는 문서로 남지 않습니다. AI는 기록된 것만 볼 수 있습니다. 남지 않은 부분은 그 자리에 오래 있었던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흔들리는 쪽은 최상위 경영층이 아니라 중간관리자들입니다. 다만 대치동 학원가의 사례와 유사하게, 그 자리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파는 상품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정보를 모아 압축하고 전달하는 일이 만들어내던 가치는 줄어들고,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구조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일이 그 자리에 들어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에서 실제로 걱정할 일은 자리의 소멸이 아니라 책임의 이동이라는 점입니다. 자리는 그대로 두고 판단의 근거만 AI에 넘기는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AI 분석 결과가 그랬다는 말은 형식적으로는 책임을 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지 않는 상태를 만듭니다.
맺음말
대치동 학원가가 지금 모습 그대로 영원히 남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리적 공간의 비중은 줄어들 수 있고,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부분도 늘어날 것입니다. AI를 도입하면 선생님의 강의와 조언은 지금보다 개인화될 것이고 그 형태도 계속 바뀝니다.
다만 바뀌는 것은 전달 방식일 뿐입니다. 학생 수준을 평가하여 학생을 선별하고 서열을 확인해주는 기능은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습니다. 서울대를 열 개 만든다고 해서 지금 서울대의 위치가 내려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입시 제도와 채용 구조가 지금과 같은 한, 대치동 학원가의 역할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도구를 가장 먼저 가장 잘 쓰는 곳은 자원과 정보가 가장 많이 모인 곳입니다. 인터넷 강의가 나왔을 때 그것을 만든 쪽도 대치동이었습니다. AI 역시 대치동을 대체하기보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먼저 쓰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학도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라질 것을 맞히려면 그것이 무엇으로 보이는지가 아니라 무엇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전 글 「AI시대: AI도 전기차도 How일뿐, What에 집중하자」에서 수단과 목적을 구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러한 예측에서도 같은 구분이 필요한 셈입니다.
무엇이 대체될지 묻기 전에,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팔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ChulJoo Kim (김철주)
※ 참고문헌
- ChulJoo Kim, 「AI시대: AI도 전기차도 How일뿐, What에 집중하자」, ckarch.kr, 2026.
- ChulJoo Kim, 「AI시대: 낀 세대, 중간 관리자가 중요하다」, ckarch.kr, 2026.
- ChulJoo Kim, 「AI시대: 인사와 조직 설계,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ckarch.kr, 2026.
- 국가데이터처, 교육부,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 국가데이터처, 2026.
- 교육부, 「대학의 자율혁신과 자발적 적정규모화 추진 지원 계획」, 교육부, 2022.
- 교육부, 「2026년 교육부 예산안」, 교육부, 2025.
- 종로학원, 「2026학년도 정시 지원 현황 분석」, 종로학원, 2026.
- 「2026학년도 대입 정시, 서울·지방대 경쟁률 격차 역대 최소…지방대 지원 증가 배경은?」, 한국일보, 2026. (종로학원 분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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