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5일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이 지역 단위 대입 자율권을 언급했습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모델로, 지역 대학이 정부의 획일적 기준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현재의 수능과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단일한 틀을 깨자는 취지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최적화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탐색 공간을 아무리 넓혀도 ‘목적함수’가 하나면 해는 같은 곳으로 모입니다. 자율권을 준다는 것은 탐색 방식을 다양화하거나 탐색 공간을 넓히는 일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목적함수에 따라 결정됩니다. 결국 방향을 정하는 것은 탐색 과정이 아니라 목적함수입니다.
기존 글 「AI시대: AI가 대치동 학원가도 대체할 수 있을까?」에 이어서, 이 글에서는 기존 교육 관련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자율성 강화가 기대한 효과를 내려면 무엇이 함께 바뀌어야 하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또 조직에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겠습니다.
목차
문제는 ‘목적함수’야
최적화 문제를 풀 때, 알고리즘이 지역 최적값(local optimum)에 갇히면 보통 두 가지를 시도합니다. 초기값을 여러 개 흩뿌려서 출발점을 다양하게 하거나, 탐색 방식을 바꿔서 탐색 범위를 넓히는 것입니다. 둘 다 유효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들로 얻는 것은 더 나은 해이지 다른 종류의 해가 아닙니다. 아무리 수단을 바꿔도 목적함수가 하나인 한, 결국 그 함수가 가장 잘 만족하는 지점으로 모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다양한 해를 원한다면 바꿔야 할 곳은 탐색 전략이 아니라 목적함수입니다. 해의 평가 기준이 하나면 탐색을 아무리 자유롭게 해도 결과의 종류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조직과 제도에서도 같습니다. 자율권은 탐색 공간이고, 평가 기준은 목적함수입니다. 자율권을 넓히면 경로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그 경로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동일한 평가 기준이 정합니다. 목적함수를 그대로 둔 채 탐색 공간만 넓히면, 사람들은 더 다양한 경로로 같은 곳을 향해 달리게 됩니다.
기존 정책은 어땠나?
제가 교육 전문가는 아니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정책들을 보면 실제로 앞서 말한 목적함수의 원리를 잘 보여 줍니다.
예를 들면, 고교 다양화는 선택지를 늘렸습니다.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과학고, 영재학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교육부와 통계청의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결과는 다양성이 아니라 같은 목적을 위한 비용 증가로 나타났습니다.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초중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70만 600원으로 일반고 희망 학생 41만 9,800원의 1.67배였고, 외고와 국제고 희망 학생은 66만 700원, 과학고와 영재학교 희망 학생은 64만 4,700원을 지출했습니다. 사교육 참여율도 자사고 희망 학생이 93.05%로 일반고 희망 학생 83.71%보다 높았습니다.
2025년 조사에서는 총액이 27조 5,000억 원으로 줄었지만,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 1인당 금액은 60만 4,000원으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학교 유형은 다르지만 준비 방식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직업계고의 경우, 취업을 목적으로 설계한 과정입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2025년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통계를 보면 졸업자 5만 9,661명 중 진학자가 2만 9,373명, 취업자가 1만 5,296명이었습니다. 진학률은 49.2%로 전년보다 1.2%포인트 올랐고, 졸업자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취업한 학생은 25.6%입니다. 취업률은 2023년부터 3년 연속 낮아졌습니다. 별도 선택지가 기존 선택지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기존 선택지로 합류하는 다른 경로가 되었습니다.
국제 바칼로레아(IB)는 대구와 제주 교육청이 2019년 공교육에 도입했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대입과의 연계입니다. IB는 논술과 서술형 위주로 평가하는데 수능은 선지형이라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기는 부담이 큽니다. 수능 성적을 이용하는 정시전형이나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있는 전형 방식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고, 대구시조차 IB 디플로마 과정이 현행 입시 체제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인증학교 확대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위 사례들의 공통점은 경로를 다양화한 쪽이 아니라 그 경로의 도착지가 본질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IB의 경우는 새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기존 시험도 따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율이 선택지가 아니라 추가 비용이 됩니다. 그러면 결국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선택하게 되고, 자율화는 다양성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별 조건이 됩니다.
제약을 추가하는 대신 목적을 바꿔야 한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과학고와 영재학교입니다.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특수목적고등학교인데, 졸업 후 의약학 계열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정부는 강한 제약을 적용했습니다. 2022학년도부터 영재학교 학생이 의약학 계열 진학을 희망하면 교육비와 장학금을 반납해야 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 밖 교육이나 연구 활동을 기재할 수 없게 했습니다. 일반고 전학도 권고했습니다. 교육비는 1인당 연간 500만 원, 3년이면 1,500만 원 수준입니다. 과학고 학생에게도 유사한 제약이 적용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재가 재학생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대학에 진학한 뒤 의대로 옮기거나, 이듬해 정시로 진학하면 교육비 반납 의무가 없습니다. 2026년 4월 황정아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6학년도 의대와 치대에 입학한 영재학교/과학고 출신 113명 중 재학 중 진학한 학생은 29명이고 나머지 84명은 졸업 후 진학했습니다. N수 경로가 74.3%입니다. 2024학년도에는 64.4%, 2025학년도에는 83.2%였습니다. 제가 직접 아는 사례만 해도 영재학교를 나와 의약학 계열로 진학한 경우가 여럿입니다. 재학 중에 진학한 경우도 있고, 한 해를 더 준비해서 간 경우도 있습니다.
교육부가 공개한 수치를 보면 영재학교 졸업생의 의약학 계열 진학률은 2023년 10.1%, 2024년 6.9%, 2025학년도 2.5%로 2년 연속 줄었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졸업 직후 진학자만 집계한 것입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7년 영재학교 입학생 613명을 추적한 결과, 2020년 졸업 직후 의약학 계열 진학자는 30명이었지만 3년 뒤에는 99명으로 늘었습니다. 전체의 16%입니다. 대학에 들어간 뒤 전공을 바꾸는 경로까지는 제재가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약조건을 추가하는 것과 목적함수를 바꾸는 것은 다릅니다. 교육비 환수나 입시 불이익은 제약조건입니다. 목적함수를 바꾼 것이 아니고 특정 경로에 일종의 과태료를 붙인 것입니다. 결국 제약조건은 우회가 가능하고, 우회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통과합니다. 결과적으로 걸러지는 것은 그 경로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비용을 못 내는 사람입니다.
이런 형태는 교육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의 통제를 걷어내고 자율에 맡겼는데 오히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은 여러 영역에서 관찰됩니다. 시장 자유를 넓히려던 정책이 반대 결과를 낳았다는 논의에서 ‘신자유주의의 역설’이라는 표현으로 불리는 것이 이 구조입니다. 강제하는 주체가 없기 때문에 저항할 대상도 없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런 상황이 조직에서는 더 흔하게 나타납니다.
흔히 권한을 최대한 위임하고 일하는 방식을 각자 정하게 하면 다양한 시도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업무 평가가 하나의 숫자로 수렴하면 주어진 자율은 그 숫자를 최적화하는 데만 쓰입니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사람이 단기 지표에서 불리해지면, 다음부터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이때 리더가 “왜 아무도 새로운 걸 안 하지”라고 묻거나 질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율권이 없어서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도했을 때 돌아오는 것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습니다. 목적함수의 변경 없이 자율권을 더 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도구를 바꾸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AI시대에 많은 조직에서 일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조율해야 하는 리더가 이전 방식으로 보고받고 평가하고 결론을 내린다면, AI를 이용해 얻게 된 무한한 능력도 결국 리더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만드는 데만 사용됩니다. 이 문제는 이전 글 「AI시대: AI 친화적인 보고? 문제는 ‘보고받는 사람’」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문서 형식을 바꿔도 보고받는 방식이 그대로면 제자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재를 붙이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행동을 금지하거나 페널티를 걸면 그 행동은 줄어듭니다. 다만 목적함수가 그대로면 사람들은 그 목적을 달성할 다른 경로를 찾습니다. 지표를 채우는 방법이 하나 막히면 다른 방법이 생깁니다. 조직에서 규정이 늘어나는데 행동은 안 바뀌는 상황이 대체로 이 형태입니다.
목적을 다각화하면?
다시 최적화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최적화 문제에서 목적함수가 여러 개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목적이 둘 이상이면 하나의 최적해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어느 한쪽을 개선하려면 다른 쪽을 포기해야 하는 해들의 집합이 나옵니다. 파레토 프론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해들 사이에 우열이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해는 성능이 좋고 어떤 해는 메모리를 덜 쓰는데, 둘 중 무엇이 나은지는 목적함수가 정해 주지 않습니다. 선택은 사람의 몫으로 남습니다.
조직에 적용해 보면, 평가 기준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일입니다. 직접적인 단기 성과 외에 무엇을 별도 기준으로 둘지가 문제인데, 예를 들면 그 일을 통해 팀이 무엇을 배웠는지, 만든 것이 다음에 재사용 가능한지, 담당자가 바뀌어도 인수인계가 되는지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단기 성과 지표에는 잡히지 않습니다.
앞서 「엔지니어의 리더십: 목표 설정, 스칼라 대신 벡터로」에서 목표를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방향과 크기를 가진 것으로 두어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기준을 여러 개 세우는 일은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다만 기준을 늘리면 평가가 복잡해지고 판단이 필요해집니다. 하나의 숫자로 줄 세우는 편이 관리하기는 편한 대신 다양성은 포기해야 합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조직에 더 도움이 되는지 골라야 하는 문제입니다.
대학 입시의 자율권은?
지금까지 정리한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지역 대입 자율권 제안을 실제로 동작하게 만드는 일은 분명해집니다. 선발 방식의 자율화에서 멈추면 안 되고, 대학 졸업 이후 진로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기사에서 무게가 실린 대목은 사실 선발이 아닙니다. 반도체, AI, 해양산업 같은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한 전형을 만들고, 입학에서 맞춤형 교육을 거쳐 지역 내 취업으로 이어지는 산학협력 생태계를 만들자는 구상입니다. 이 부분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기존 방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시도가 됩니다.
다만 제약도 분명합니다. 대통령 스스로도 이 제도를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며, 전남광주에서 교육받은 학생이 다른 지역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제한하려는 취지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정책 설계로는 당연한 단서이지만, 기존 경로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새 경로가 자리 잡으려면, 그 경로를 선택했을 때 돌아오는 보상이 기존 경로만큼 확실해야 합니다. IB 사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중 부담이 되풀이되면 새 전형은 대안이 아니라 차선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맺음말
자율권 자체는 방향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탐색 공간을 넓혀도 목적함수가 하나면 해는 같은 곳으로 모입니다. 국내 교육 정책이 반복해서 보여 준 것이 이것입니다. 고교를 다양화해도, 별도 과정을 만들어도, 강한 제재를 걸어도 평가 기준이 그대로면 사람들은 늘 그 기준이 가리키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에 자율권을 주기 전에 평가 기준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AI를 이용해서 자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으로 바꾸라고 하기 전에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무엇을 잘한 것으로 볼지 정하지 않은 채 자율만 늘리면, 자율은 각자 알아서 기존 기준을 맞추는 쪽으로 달려갑니다.
진학 방식을 늘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다양한 경로를 거쳐온 학생이 갈 곳을 만드는 것입니다.
ChulJoo Kim (김철주)
※ 참고문헌
- ChulJoo Kim (김철주), 「엔지니어의 리더십: 목표 설정, 스칼라 대신 벡터로」, ckarch.kr, 2026.
- ChulJoo Kim (김철주), 「AI시대: AI 친화적인 보고? 문제는 ‘보고받는 사람’」, ckarch.kr, 2026.4.
- ChulJoo Kim (김철주), 「AI시대: AI가 대치동 학원가도 대체할 수 있을까?」, ckarch.kr, 2026.
- 이준경, 「”수능·학종 틀 깬다”…이 대통령 제안 ‘전남광주형 대입 자율권’ 급부상」, 아시아경제, 2026.8.
- 오보람, 「영재학교 출신 16% 의약학으로…공대·자연대 갔다 재수」, 연합뉴스, 2026.2.
-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2025년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통계조사 결과」, 한국교육개발원, 2025.11.
- 「’자사고’ 희망 학생 사교육비 70만600원, 일반고 대비 1.7배」, 영남일보, 2025.3.
- 「과학고·영재학교서 의대 진학 줄었다는데, 정말?」, 경향신문, 2025.8.
- 「영재·과학고 의대 진학률 40% 급감, ‘의대 쏠림’ 완화 신호탄일까?」, 프레시안, 2026.4.
- 「IB 경기 공교육 도입② 대구, 제주 그리고 일본 사례로 들여다본 IB교육」, 더리포트, 20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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