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리더십: 숫자만 쓰면 OK? 기준 없는 숫자의 함정

며칠 전 뉴스를 보던 중 한 기사에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백화점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고, 소비 양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백화점 상반기 매출은 작년보다 20.1% 늘었지만, 대형마트는 7.3%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인 쇼핑객도 늘었지만 소비의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기사에 숫자가 여러 개 나열되었고, 각각의 의미는 알겠는데, 그게 과연 저 결론을 유도하기에 충분한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궁금해서 좀 더 찾아보니 같은 수치를 언급한 기사가 더 있었습니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산업통상부의 「’26년 5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과 「’26년 상반기 및 6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보도자료를 인용했습니다. 원문을 찾아서 내용을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그 자료가 해당 기사의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전 글 「엔지니어의 리더십: 목표 설정, 스칼라 대신 벡터로」와 「엔지니어의 리더십: 파이썬 뗐다? 상태는 O/X 대신 범위로」에서 다룬 이슈들의 연장선상에서, 각종 자료에 제시된 숫자 하나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숫자 해석을 어떻게 할지, 그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목차


숫자의 출처

산업통상부 보도자료 본문에는 ‘40%’라는 숫자나 ‘양극화’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2026년 5월 백화점 매출이 전년 같은 달보다 24.5% 늘었다고 설명하면서 그 배경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입과 소비심리 회복을 들었습니다. 상반기 자료는 소비자심리지수가 97에서 107로, 외국인 관광객이 883만 명에서 1,071만 명으로 늘었다는 수치를 각주로 달아두었습니다.

‘40%’는 붙임에 실린 백화점 상품군별 매출 비중 표에 있는 값으로, 해외유명브랜드 항목의 5월 수치입니다. 자료에서 정확한 값을 인용하긴 했으나,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논리적 공백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숫자 하나만으로는 방향을 알 수 없다

해외유명브랜드 매출 비중 ‘40%’는 크기만 있는 값입니다. 이 값 하나만 놓고 보면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고소득층의 지출 증가
  • 외국인 방문객과 소비 증가
  • 판매 가격 인상

소비 양극화를 주장하는 기사들은 아마도 첫 번째를 중심에 두고 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세 가지 해석은 뜻하는 바가 전혀 다릅니다. 첫 번째라면 국내 소비 구조의 문제이고, 두 번째라면 관광 수입에 가깝고, 세 번째라면 수요와 무관합니다. 단지 40%라는 값만으로는 어느 쪽인지 가려낼 수 없습니다. 방향을 알려면 다른 정보가 필요합니다.

산업통상부 자료를 보면 추가 정보가 있습니다. 백화점 항목에는 구매건수와 구매단가 증감률이 따로 실려 있습니다. 2026년 5월 백화점의 구매건수는 13.4%, 구매단가는 9.8% 늘었습니다. 두 값을 곱하면 1.134 × 1.098 = 1.245이고, 매출 증가율 24.5%가 나옵니다. 손님 수가 13.4% 늘었고, 한 사람이 쓴 금액이 9.8% 늘었습니다. 소수의 구매자에게 매출이 집중되었다기보다는 방문하는 사람 자체가 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이 21% 늘었다는 수치와도 맞습니다.

같은 표로 다른 업태도 나눠볼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는 구매건수 △7.4%에 구매단가 2.4%, 준대규모점포는 건수 △7.4%에 단가 △0.6%였습니다. 백화점과 편의점은 손님이 늘었고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는 손님이 줄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이 자료로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대형마트를 떠난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이 표에 없습니다.

상반기 자료를 보면 온라인 부문의 식품 매출이 11% 넘게 늘었고, 온라인이 전체 유통 매출의 59.6%를 차지합니다. 대형마트 매출에는 소비 여력뿐만 아니라 온라인 쇼핑의 확산, 편의점 소비의 증가, 각종 점포 수 변화 같은 요인이 함께 얽혀 있습니다. 어느 쪽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가리려면 국내 소비가 어떤 경로로 이루어지는지를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백화점 해외유명브랜드 항목만으로 소비의 양극화라는 해석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프상의 한 점은 추세가 아니다

‘40.0%’는 5월 한 달의 값입니다. 2026년도 상반기 동안 해외유명브랜드 비중은 37.2% ~ 41.1%였고, 4월이 41.1%로 가장 높았습니다. 작년 12월에도 38.1% 수준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드는 의문이 작년 12월 38.1%에서 5월 40.0%까지 1.9%p 오른 것을 두고 소비의 양극화라는 결론을 낼 만큼 유의미한 숫자인가입니다. 또 5월보다 높은 값이 있는데, 왜 여러 기사에서는 굳이 5월의 40%를 강조해서 이용했는가입니다.

추측건대, 해당 보도자료를 인용한 첫 기사에서 5월 값을 사용했고, 해석의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숫자 하나가 아니라 구간을 보아야 합니다.


그 밖에 놓친 것들

백화점 안에서도 명품만 오른 것이 아닙니다.
5월 백화점 전년동월 대비 상품군별 증감률은 잡화 13.6%, 여성정장 13.9%, 여성캐주얼 25.7%, 남성의류 15.6%, 가정용품 17.3%, 식품 12.3%입니다. 전 품목이 두 자릿수로 늘었습니다. 물론 해외유명브랜드가 37.3%로 변화폭이 크긴 하지만, 보도자료 본문에서도 전 부문에서 실적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합니다.

정의가 통일돼 있지 않습니다.
표 아래에 “해외유명브랜드는 각사 분류 기준”이라는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롯데, 현대, 신세계가 각자의 기준으로 분류한 값을 모은 것입니다. 대부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무엇이 명품인지에 대한 공통 정의가 없습니다.

대형마트 부진의 원인도 자료에 적혀 있습니다.
5월 대형마트는 비식품 소계가 0.2%, 식품이 △8.1%였습니다. 비식품은 보합인데 식품만 빠졌습니다. 식품이 매출의 68.4%를 차지하니 전체가 △5.1%가 됩니다. 보도자료에서는 대형마트의 부진을 주력 분야인 식품군 부진으로 명시했습니다.

비교 기준이 낮습니다.
2025년 상반기 백화점 매출 증가율은 0.5%였고, 2026년 상반기 20.1%는 그 위에서 나온 값입니다. 보도자료에서도 전년도와 비교하여 올해 고공성장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사 범위가 한정돼 있습니다.
이 통계의 백화점은 롯데, 현대, 신세계 3사입니다. 갤러리아와 AK 등 다른 백화점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참고 페이지에도 통계청 조사와 모집단이 달라 증감의 크기나 방향이 다를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양극화를 말하려면?

‘소비 양극화’는 소득 계층에 따라 소비가 갈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이 결론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적어도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소득 정보입니다. 산업통상부 자료의 조사 항목은 업태별, 상품군별 매출액과 구매건수뿐입니다. 백화점 고객의 구성이 어떤지, 대형마트를 떠난 고객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소득분위별 소비지출 같은 자료가 필요합니다.

둘째, 내국인과 외국인의 분리입니다.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이 883만 명에서 1,071만 명으로 늘었고, 보도자료도 백화점 성장의 배경으로 이를 들었습니다. 명품 매출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이라면 국내 소비 양극화가 아니라 관광 수입 증가에 가깝습니다.

셋째, 채널 이동과 소비 위축의 구분입니다. 대형마트를 떠난 사람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쓸 돈이 줄어든 것인지는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상반기 온라인 식품 매출은 11% 넘게 늘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채워지면 양극화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기사들이 인용한 보도자료만으로는 거기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조직의 보고에서는?

사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조직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AI Transformation 관련하여서 AI 업무 전환율이 30%라는 보고를 받으면 지난달은 얼마였는지, 다른 조직은 어떤지, 전환 대상은 업무 전체인지, 조직 전체 평균인지 아니면 개인별 평균인지 수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숫자의 기준이 되는 정보가 함께 오지 않은 값은 그 자체로는 좋은 신호도 나쁜 신호도 아닙니다.

보고하는 쪽에서는 순서를 뒤집어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결론을 말하고 싶은지 먼저 정하고, 그 결론에 필요한 것이 지금 가진 데이터에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일종의 검산 과정입니다. 만약 없다면 결론을 바꾸거나 데이터를 더 구해야 합니다.

이게 말은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목표를 스칼라 대신 벡터로 세우자는 이야기도, 상태를 O/X 대신 범위로 보고하자는 이야기도 결국 지향점은 같습니다. 숫자 하나를 내놓는 것은 쉽고 그 옆에 기준을 붙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 회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보고를 했고, 또 해외연구소장으로서 직원들의 다양한 보고를 받으면서 이 일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어려운 일이니 자꾸 곱씹고 되짚어서 각인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맺음말

이 글이 소비 양극화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진행 중일 수도 있고, 다른 통계가 그것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기사가 인용한 보도자료만 가지고는 그 결론에 도달하기가 어렵습니다. 소비 계층에 대한 분석 없이 계층 간 차이에 대한 결론이 나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사가 강조한 ‘40%’라는 값 자체는 정확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그 옆에 무엇을 놓을지 정하는 일입니다.

숫자는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기준이 말하게 합니다.

ChulJoo Kim (김철주)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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